아이가 중간고사를 봅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처음 큰 시험을 보는 거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엄마, 아빠가 다 공부하는 직업을 가진지라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를 강요하며 키우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더 이상 현실을 회피할 수도 없고, 갑자기 너그러운 부모에서 호랑이 부모가 되려니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이 많이 듭니다.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킬 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당근과 채찍이지요. 아이에게 현재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밝은 청사진에 대해 이야기해봤자 멍한 눈을 비빌 뿐이요,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는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설교해보자니 저 자신도 ‘그런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던가’ 하며 고소(苦笑)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공부 안 하면 야단치고, 성적 오르면 선물 사주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도 중간고사 동안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잘 버티면 성적에 관계없이 선물을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이번에 선물을 사주는 걸로 구슬리면 다음 기말고사 때는 어떻게 하나? 2학기 때는? 고3때까지 아직 6년이다 더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어떤 선물로 아이를 북돋아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요점은 이런 겁니다. 처음엔 만 원짜리 선물을 사줍니다. 만약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면, 다음번에 아이는 그 정도의 선물은 당연한 것으로 기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번엔 2만 원짜리를 사줘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점점 선물이 커지다 보면 언젠가는 “얘야 그 이상의 선물은 어린 네겐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구나”라는 말을 해야 될 터이고, 아이에겐 더 이상 당근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 걱정은 모든 관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걱정입니다. 요즘은 봉급 자체를 인센티브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센티브를 도입하면 초기에는 분명 생산성이 오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도입 이전으로 원상 복귀해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보너스를 주거나, 해외여행을 시켜주거나, 여하튼 갖가지 방법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올리려 해도 점점 더 종업원들의 기대 심리만 높아지지 어떤 방법도 영속적인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당근과 채찍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강도가 세져야만 한다는 이론은 1942년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LeoCrespi)에 의해 처음 수립되었습니다. 그는 쥐들에게 미로 찾기를 시키는데, 한 그룹은 미로 찾기에 성공할 때마다 먹이 하나씩을 주고 다른 그룹은 5개씩을 주었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먹이 5개를 상으로 준 그룹이 훨씬 미로를 빨리 찾아내었습니다. 이렇게 4~5번 반복한 후 이번에는 앞서 1개씩 받던 그룹에는 상을 5로 늘려주고, 5개씩 받던 그룹에는 1개로 줄였습니다. 그랬더니, 전자의 그룹은 처음부터 5개씩 받던 그룹이 초기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미로를 찾았답니다. 반대로 후자는 처음에 1개씩 받던 그룹의 초기 성적보다 훨씬 못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이 결과의 의미는 결국 당근과 채찍 전략에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지금 현재 당근과 채찍을 얼마씩 주느냐가 아니라 ‘이전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이’ 주느냐라는 것입니다. 크레스피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미국의 전통적인 팁 제도에 대해 반대 운동을 벌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팁은 좀 더 친절한 서비스를 끌어내기 위해 손님이 주는 일종의 인센티브인 셈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팁은 당연히 줘야만 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팁을 못 받으면 자존심의 상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상을 줌으로써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상을 점점 더 많이 줄 수밖에 없고, 그나마 쭉 받아오던 상을 못 받게 되면 훨씬 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반대로 벌을 줌으로써 행동을 조절하려 한다면 점점 더 벌의 강도가 강해져야만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새 학교에서의 체벌 금지 문제 때문에 찬반양론이 격렬히 부딪치고 있지만, 만약 크레스피 효과가 맞는다면 체벌을 통해 학생들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패배가 정해진 싸움입니다. 점점 더 많은 체벌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결국 한 아이의 잘못 때문에 반 학우들이 모두 엎드려뻗쳐서 몽둥이를 맞던 제 학창 시절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망국 포퓰리즘이라 비난받는 무분별한 복지 정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지금 현재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 때문에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로운 공약으로 내걸어지는 ‘더 많이, 더 넓게’라는 구호만이 표심을 자극할 뿐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중학교에 간 우리 아이의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고, 종업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으며,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요? 크레스피 박사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2008년 91살의 나이로 타계하셨더군요. 팁 안 주기 운동을 했던 그이지만 평생 외식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팁도 준 적이 없답니다.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고 눈을 감으셨으니, 저로서는 다시 당근과 채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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