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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개성화 [deindividuation]

개인이 군중의 구성원이 되어 집단 행동을 하게 되면 군중 속에 함몰되어 내적 규범 및 사회 규범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극단적으로 행동하기 쉬워진다. 개인이 몰개성화 상태가 되면 자기 관찰이나 자기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내적 통제력이 감소하고, 사회적 평가에 대한 관심도 감소하여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죄책감이나 공포, 부끄러움 등의 감정에 둔감해져 통제력이 약해지고, 따라서 몰개성화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은 공공의 윤리나 사회적 규범 등 내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던 기제들이 약화됨에 따라 불법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 등 개인적으로는 좀처럼 행하지 않을 다양한 반사회적인 일탈 행위를 비교적 쉽게 행하게 된다. 몰개성화(deindividuation)는 집단으로 행동하는 상황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정체성과 책임감이 약화되어 집단 행위에 민감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간혹 대규모 시위 군중이 저지르는 극단적인 행동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고 책임감을 상실한 채 집단의 정서에 몰입하여 야기된 몰개성화의 예이다. 『군중』이라는 저서를 통해 군중 심리학의 포문을 연 프랑스 사회학자 르 봉(Le Bon, 1895)은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개인일지라도 군중의 구성원이 되어 집단 행동을 하면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극단적으로 행동하기 쉬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사회 전염(social contagion)의 개념을 제시했다. 사회 전염이란, 집단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한 집단 의식이 병균이 전염되듯 집단의 다른 부분으로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 전염 현상이 발생하면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 매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에 군중은 집단 정신(collectivemind)에 따라 행동하며, 개인은 군중 속에 함몰되어 내적 규범 및 사회 규범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몰개성화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은 충동적, 비이성적, 탈규범적, 몰아적 행동을 하기 쉽다. 페스팅거, 페피톤, 뉴콤(Festinger, Pepitone, & Newcomb, 1952)은 몰개성화 상황에서 개인은 공공의 윤리나 사회적 규범 등 내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던 기제들이 약화됨에 따라 불법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 등 개인적으로는 좀처럼 행하지 않을 다양한 반사회적인 일탈 행위를 비교적 쉽게 행하게 된다고 했다. 많은 학자들이 몰개성화 현상의 본질과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다. 짐바르도(Zimbardo, 1969)는 몰개성화 상태를 ‘집단 구성원들이 평소 규범 등에 억제되어 잘 하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역치가 낮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상태’라고 설명하면서 몰개성화 과정 모형을 제시했다. 몰개성화 과정 모형은 몰개성화를 초래하는 선행 요인과 그 결과로 야기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몰개성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의 자극제가 되었다. 몰개성화 과정 모형에 따르면 몰개성화를 야기하는 선행 요인으로는 익명성의 획득, 커다란 집단의 크기, 흥분, 집단 내에서 책임감의 공유 혹은 분산, 그에 따르는 개인의 책임감 감소, 시간 조망의 변화로 미래와 과거에 대한 생각이 약화되고 당면한 현재만이 중요한 상태, 알코올이나 약물의 사용 등이 있다(Zimbardo, 1969). 짐바르도는 몰개성화의 선행 요인 중에서 익명성을 가장 강조했다. 집단에 속한 개인은 집단 구성원들 모두 동일한 의복을 입는 등의 상황적 조건으로 개인이 고유하게 지닌 개성이 남들로부터 차별화되기 어려울수록 익명의 상태가 되어 집단이 보이는 행동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되고, 당장 직면한 상황에서 판단 가능한 순간적인 단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한덕웅 등, 2010). 따라서 익명성이 강하게 보장된 집단에서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윤리적 가치나 사회적 규범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일탈적이며 충동적인 행동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한덕웅 등, 2010). 이러한 상황에서는 행동을 종식시키기도 어렵다. 그러나 익명성이 유발한 몰개성화 상황이 꼭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몰개성화된 집단 구성원은 단순히 과격하고 폭력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소속된 집단의 집단 규범, 집단 목표 등 집단 행위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의 행동이 친사회적이라면 해당 집단의 구성원은 역시 그에 따른 친사회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존슨과 다우닝(Johnson & Downing, 1979)은 이를 경험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백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자는 피험자들에게 흰색 의복을 입도록 했는데, 이때 반사회적 단서 조건의 피험자들 앞에서는 “옷이 KKK단(Ku Klux Klan, 폭력적 인종 차별을 표방하는 비밀 결사단) 유니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친사회적 단서 조건의 피험자들 앞에서는 “간호사 유니폼을 빌릴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 후 피험자들이 타인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는 상황을 조작했더니, 반사회적 단서 조건의 피험자들이 친사회적 단서 조건의 피험자들보다 전기 충격을 더 많이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KKK단 단서를 제시받은 반사회적 조건 피험자들의 경우 KKK단의 집단 규범에 영향을 받은 반면, 간호사 단서를 제시받은 친사회적 조건의 피험자들은 간호사의 규범인 박애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몰개성화는 집단의 크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멀른(Mullen, 1986)은 폭도들의 숫자가 많은 집단일수록 피해자에 대한 폭력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보고했으며, 뉴턴과 만(Newton & Mann, 1980)은 종교 집회에 대한 실험에서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종교적인 설교에 더욱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현재만이 부각되는 상태나 알코올 혹은 약물의 사용 등도 몰개성화에 선행하는 요인으로 언급되었는데, 이 요인들은 대부분 집단 구성원의 흥분과 관련이 있다. 짐바르도(Zimbardo, 1970)는 전쟁 전에 부르는 군가 등으로 고취된 전쟁 의식이 전사들을 흥분시킴으로써 몰개성화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선행 요인으로 인해 몰개성화의 조건이 활성화되면 집단에 속한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정체성을 상실하고 집단에 몰입하게 된다. 개인이 몰개성화 상태가 되면 자기 관찰이나 자기 평가를 제대로 못 하고, 사회적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자아 통제력 또한 약해져, 결과적으로 개인은 평소 개인적으로는 행하지 않았을 규범적으로 억제된 비사회적 행동을 쉽게 하게 된다. 몰개성화의 결과로 나타난 행동들은 외부의 평가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감소하면서 상당 부분 과격하고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으로 된다. 때문에 간혹 집단에 지나치게 몰입한 상태로 행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몰개성화로 유발된 행동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멈추기가 상당히 힘들다. 또한 몰개성화된 개인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의 행동에는 즉각적이고 허용적으로 과잉 반응하는 반면, 외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에는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한편, 다이너(Diener, 1980)는 자기 인식의 감소와 경험의 변화가 몰개성화를 유발한다는 2요인 모형을 제시했다. 우선, 자기 인식의 감소는 주의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는가와 큰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주의의 초점이 자신을 향해 있을 때는 자신의 생각과 기분 등을 신중히 고려한 후 실행에 옮기며, 그 행동에 대한 결과 또한 스스로의 고유한 기준에 의거해 평가한다. 반면에 주의의 초점이 타인이나 집단 등 외부를 향하면, 주의가 스스로를 향해 있을 때보다 신중하고 면밀한 판단 없이 행동하기 쉽다(Wicklund, 1975). 몰개성화 상태에서는 주의 초점이 외부로 향해 있어 자의식이 낮아지므로 개인이 체계적인 사고나 분석 과정이 결여된 채로 행동하기 쉽고, 이로 인해 당시의 상황적 단서에 크게 영향을 받아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이나 그로 인해 유발되는 정서에 여과 없이 반응하게 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이너는 각각 8명의 실험 참가자와 6명의 실험 협조자로 구성된 자의식 조건 집단(높은 자기 인식)과 비자의식 조건 집단, 몰개성화 조건 집단을 설정하여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자의식 조건 집단에 속한 참가자들은 명찰을 착용하고 스스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다른 참가자들 앞에 공개했으며, 토론 시 자신의 개인적 입장을 밝히고 질문에도 개별적으로 대답했다. 반면, 비자의식 조건의 집단에 속한 참가자들에게는 집중력을 요하는 과제를 부과함으로써 참가자들의 주의를 분산했다. 마지막으로 몰개성화 조건에서는 참가자들을 자의식 조건 집단에서처럼 개개인으로 대하지 않고 집단으로 대했으며, 집단적으로 행하는 여러 과제를 통해 익명성을 높이고 집단 동일시 등의 상태가 고양된 상황으로 이끌었다. 모든 활동이 끝난 후, 참가자들에게 실험에 대한 주관적 느낌과 반응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이너(1980)는 몰개성화를 야기하는 두 요인을 각각 ‘자의식’과 ‘경험의 변화’로 나누어 정리했다. 우선, 첫 번째 자의식(self-awareness) 요인은 행동의 계획성이나 사전 고려가 없이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의식(self-consciousness)이 거의 없어지며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무심해지고, 집단과의 강력한 동일시를 추구하는 특성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요인은 경험의 변화(altered experiencing)로, 개체로서의 정체감을 상실하고 익명성의 상태를 강렬히 경험하며, 개인적으로 행동할 때와는 다른 의식 상태에서 환각 등 흔치 않은 경험을 하는 등의 특징을 포함한다. 각 조건에서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의 설문 결과를 보면, 몰개성화 조건의 참가자들은 나머지 두 집단의 참가자들보다 자의식의 상실이 유의미하게 더 뚜렷이 나타났다. 또한 몰개성화 조건의 참가자들은 자의식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경험의 변화와 관련된 특징들을 훨씬 더 많이 보고했다. 프렌티스 던과 로저스(Prentice-Dunn & Rogers, 1982, 1989)는 다이너의 2요인 모형을 발전시켜 자기 인식을 공적(public) 자기 인식과 사적(private) 자기 인식으로 나누고, ‘책임 단서(accountability cues)’와 ‘주의 단서(attentional cues)’가 각각 공적 자기 인식과 사적 자기 인식 수준의 감소를 가져와 궁극적으로 집단의 반사회적 일탈 행동에 이르는 경로 모형을 고안했다. 우선, 공적 자기 인식은 일반적으로 익명성이나 책임감의 분화 등 책임 단서의 영향을 받아 둔감해지며, 이렇게 공적 자기 인식이 낮아지면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입히는 피해 등 행동에 따르는 결과나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에 둔감해진다. 반면 사적 자기 인식은 집단 응집성, 생리적 흥분 등 주의 단서의 영향을 받아 둔감해지며, 이렇게 사적 자기 인식이 낮아지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고 내적 가치관이나 규범에 대한 주의력이 줄어들어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반규범적 행동이나 일탈 행동에 이른다. 프렌티스 던과 로저스(1982, 1989)는 이 두 경로 모두 사람의 일탈 행동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몰개성화 상태는 공적 자기 인식이 둔감해진 상태보다는 사적 자기 인식 수준이 줄어든 경우를 가리킨다고 했다. 몰개성화는 개인 정체성 또는 자기 인식이 상실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를 겪음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레이처와 그 동료들(Reicher, 1984, 1987; Reicher, Spears, & Postmes, 1995)은 몰개성화 현상을 개인 정체성이 사회 정체성으로 변화되면서 새롭게 자리잡은 사회 정체성이 행동을 이끄는 것으로 보았다. 사회 정체성이란, 어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타인과는 다른 개별적인 존재로 자신을 지각하기에 앞서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자기 개념이다. 사회 정체성 이론을 제시한 타즈펠(Tajfel, 1978)은 사회 정체성을 “스스로가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지식과, 해당 집단의 일원으로서 부여받은 가치와 이와 관련한 정서적인 의미에서 기인하는 자기 개념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사회 정체성이 점화된 개인은 내집단 규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성한기, 1996). 때문에 개인이 속한 집단의 규범이 반사회적이라면 몰개성화된 개인은 반사회적 행동을 하기 쉬워 때로는 개인으로서 결코 행하지 않을 파괴적 행위를 하기도 하지만(Reicher, 1987), 집단 규범이 친사회적이라면 몰개성화된 개인은 친사회적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짐바르도(1970)와 다이너(1980)는 일반적인 사회 규범을 들어 몰개성화를 설명하는데 사용했으나, 레이처(1987)는 규범이라는 것을 해당 집단이나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몰개성화된 군중의 행동은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 반하는 일탈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일 수는 있으나, 그들이 속한 집단의 규범에는 따르는 친사회적인 행동이라고 보았다. 몰개성화가 개인적 정체성을 다시금 되살리기 위하여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은 집단에 속해 있을 때면 개인으로서 자신의 개성이나 고유한 특성이 집단에 매몰되어 정체성을 상실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느끼는 집단 구성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여러 집단 구성원들 속에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는 행동을 하게끔 동기화된다(Maslach, Stapp, & Santee, 1985). 매슬랙(Maslach, 1972)은 참가자들을 4인 집단으로 구성하여, 두 피험자에게는 이름을 부르는 등 피험자 각각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대했고(개별화 조건), 나머지 두 피험자에게는 이름을 부르거나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등의 개별적인 접촉 없이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며 이야기를 했다(몰개성화 조건). 그 후 피험자들에게 특정한 몇몇 사안들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도록 했는데, 몰개성화 조건의 피험자들이 개별화 조건의 피험자들보다 특이한 답변을 하고 실험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애쓰는 등 개인적 정체성을 재확립하려는 훨씬 더 다양한 시도들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서, 이 관점에 따르면 집단 행동 상황에서 개인이 남의 눈에 띄는 일탈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집단에 의해 위기에 처한 개인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집단에서 해당 개인을 두드러지게 만들어 그 집단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결국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집단적 행위를 끌어낸다.